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,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.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반공포로 석방 사건 (문단 편집) == 의의 == [[중국 인민지원군]]의 개입으로 [[6.25 전쟁|전쟁]]이 장기화되면서 부담을 느낀 [[미국]]이 휴전을 추진하자 [[이승만]]은 "([[중국 인민지원군|중공군]] 백만이 바로 코앞에 있는 상태에서 이대로) [[휴전]]을 받아들이라는 것은 한국민에 대한 [[사형|사형집행]] 영장이다"라며 한국에 대한 안전보장 없이는 [[휴전]]을 할 수 없다며 극렬히 반대했고 반공포로 석방 사건을 일으켜 미국을 압박하였다. 결국 당장 휴전에 급한 미국이 양보하여, 이승만은 휴전을 방해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으로부터 막대한 원조와 [[대한민국 국군]] 20개 사단의 무장 지원, 그리고 '''[[한미상호방위조약]]'''을 얻어내었다.[* 이승만은 이러한 방식으로 미국을 압박하여 신생 [[약소국]]이었던 [[대한민국]]이 [[제2차 세계 대전]] [[승전국]]이자 세계 [[초강대국]]인 미국을 협박하는 아이러니한 사태가 그의 집권기에 자주 벌어졌다. 오늘날 [[북한]]이 종종 쓰는 이 [[벼랑 끝 전술]]은 사실 이승만이 [[원조]]였던 셈.] 이처럼 그는 단지 휴전을 방해하지는 않겠다는 제스처 하나로 [[강대국]]을 상대로 막대한 이득을 취할 수 있었다. 이로서 한국은 미국의 각종 원조와 확보된 [[안보]]를 토대로 이후 [[한강의 기적|경제 발전]]에 자금을 올인할 수 있었고 반공포로 석방으로 미국의 허를 찔러 따낸 '''[[한미동맹]]'''은 이승만의 가장 큰 업적으로 꼽힌다.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-BY-NC-SA 2.0 KR으로 배포하고,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.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.캡챠저장미리보기